코로나와 함께 이단들의 정체가 발가벗겨지는 형국이다. 2020년 초 코로나 팬데믹의 시작과 함께 신천지의 역기능이 사회적으로 노출되었고, 1년이 지난 오늘 인터콥이 동일한 문제로 사회적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마치 데자뷔를 보는 듯하다.
두 사례 모두 종교 모임과 관련된 집단 감염이 확산된 경우이다. 신천지의 경우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감염 확산이 이루어졌지만, 인터콥의 경우에는 그 범위가 전국적이다. 질병관리 지침과 무관하게 대규모 대면 집회가 열렸고, 이를 통해 감염이 확산되었고, 참가자의 자발적인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아 대규모 지역 감염이 확산된 유사점이 있다.
왜 인터콥은 사회적 논란과 비판의 중심에 서게 되었을까?
인터콥을 생각하면 두 가지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나는 무모하리만큼 열정적인 선교단체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국내외 교회와 해외선교에 있어서 분열의 원인 제공자의 모습이다. 인터콥의 부작용으로 인해 다수 교단들은 인터콥에 대해, 참여와 교류를 금지하거나 자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교회 안의 문제로만 여겨지던 인터콥 문제가, 코로나19와 관련해 이렇듯 사회적 이슈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인터콥의 ‘음모론’과 ‘이중 멤버십’ 관련으로 보인다.
'음모론'
최근 언론은 최바울 선교사의 설교에 주목하고 있다. 소위 음모론 관련 설교이다.
최 선교사는, 악한 세력이 세계를 장악하고 통제하기 위해 철저히 기획한 프로젝트(작전)가 코로나 팬데믹이라고 설명한다. 즉 코로나를 의도적으로 생산해 퍼트렸다는 것이다. 게다가 백신을 맞으면 DNA 구조가 변하고, 마침내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 설교의 요지였다.
만약 이러한 음모론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믿는다면, 당연히 안전 불감증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방역당국의 지침과는 무관하게, 상주열방센터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 참석할 수 있고, 감염 예방에 소홀할 수 있으며, 백신을 거부할 수도 있다.
음모론은 팩트체크가 불가능한 주장이다. 음모론을 꾸미기 위해 성경의 언어들이 그럴 듯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실상은 비성경적인 오류와 정치편향적인 주장으로 점철되어있다. 성경의 내용을 취사선택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는 ‘예언과 해석’이 아니라, 대립과 분노와 위기를 조장하는 ‘비성경적인 미혹’이다.
'이중 멤버십'
코로나19 감염 확산과 관련한 신천지의 최대 문제는 거짓말과 비협조였다. 이는 신천지 신도들의 이중 멤버십으로 인한 불가피한 현상이었다. 즉 기성 교회의 교인으로서 활동하는 신천지 신도의 경우,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서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 동선을 밝히지 않는 등 방역당국에 비협조적일 수밖에 없었다. 인터콥의 경우에도 신천지와 유사한 특징들이 나타난다.
인터콥 회원들은 기성 교회의 교인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소속된 교회보다는 인터콥에 더 헌신적이다. ‘교회 중심’이 아니라 ‘인터콥 중심’이다. 인터콥의 선교훈련에 더 적극적이고, 인터콥의 단기선교에 더 집중한다. 신앙생활의 우선순위도 인터콥 활동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인터콥의 영향력이 강한 교회의 경우, 전통적인 교회조직 질서가 흔들리거나, 목회자의 권위가 도전받는 사례가 다수 보고된다.
이는 인터콥의 우월의식과 선민의식 경향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보다, 인터콥 선교훈련 이수와 단기선교 참가 여부에 따라 영적 위치와 헌신도가 결정된다. 담당 목회자의 동의 없이 교인들을 인터콥 선교훈련과 단기선교로 초대한다. 결국 교회는 인터콥 회원들이 신규 회원들을 모집하는 장소로서의 역할을 하고, 목회자의 동의가 없는 교회 내 인터콥 회원들은 목회의 잠재적 위험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이중 멤버십으로 인해, 자신이 인터콥 회원인 것이 알려지는 것도 부담이고, 특히 자신이 상주열방센터에 다녀왔다는 것을 밝히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결국 질병관리본부의 연락을 받지 않거나, 검사에 응하지 않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즉 자신의 인터콥 관련성을 감추는 한편, 인터콥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왜곡된 헌신이 ‘방역 비협조’로 나타나는 것일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인터콥에게 필요한 것은 ‘열정적인 세계선교’가 아니라, ‘성경적인 이웃사랑’이다. 과거 인도, 중국, 일본 등지에서 인터콥 관련 논란이 발생했을 때처럼, 증거가 제시되고 난 후에야 사과하는 것보다, 한발 앞서 선제적으로 스스로의 문제를 정직하게 해결해 나아가야 한다. 만약 이번에도 변명과 비협조로 일관한다면, 인터콥은 분열과 거짓말에 능한 이단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인터콥에 관한 이 글을 쓰는 순간순간, 오늘날 한국교회의 분열과 혼란이 떠올라 마음이 답답하다. 만약 인터콥과 교회가 동일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인터콥은 논란이 있는 단체이기 때문에 편견을 가지고 정죄하고, 교회는 정통이기 때문에 면죄부를 준다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불확실하고, 불안정하고, 불평등한 코로나 세상에서, 교회는 과연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 조바심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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