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와의 싸움과 재림주 계보 연구2002년 전남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학내 동아리 임원단을 장악하고 있던 신천지 학생들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캠퍼스 안팎에서 포교 활동을 하는 그들에게 다가가 활동을 방해하기도 하고, 피해 학생들에게 정체를 알려주기도 했다. 그들과의 싸움이 본격화되면서 신천지의 조직과 특성, 그리고 그들의 실체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그러면서 마음속에 깊은 질문이 피어올랐다. ‘왜 우리는 포교 활동을 방해만 하고, 저 영혼들을 신천지에서 건져내지는 못하는가? 어떻게 해야 그들이 다시 교회 안으로 돌아와 참된 자유를 누리게 할 수 있을까?’ 이 고민이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이단 상담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2004년에는 논문을 완성하지 못해 대학원을 수료하는 데 그쳤으나, 사범대학 조교로 임용되면서 학교에 남아 신천지와의 싸움을 이어갈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지도교수님께서 논문 주제로 ‘이단 사이비의 윤리성’을 다룰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고, 마침내 2008년 “한국 개신교계 신종교의 윤리성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다. 이 논문은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의 이만희 교주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한국 개신교계 자칭 재림주들의 계보를 추적하는 연구였다. 그 과정에서 한국 교계에 이단 사이비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과 구조도 함께 정리할 수 있었다.선행 연구와 공헌연구를 진행하며 명확히 깨달은 사실은 선배 이단 사역자들의 숭고한 헌신과 수고였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직면했을 생명의 위협, 그리고 그 조사 결과를 기록으로 남기기까지 쏟아부었을 열정과 혼신의 힘을 생각하니 절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이 들었다. 현재 많은 이가 이단 사이비의 족보를 유튜브나 책으로 발표하고 있지만, 정작 그 기틀을 마련한 선배 사역자들에 대한 감사와 공헌을 언급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그중에서도 존경과 감사를 가장 먼저 받아야 할 인물은 단연 국제종교문제연구소 고 탁명환 소장이다. 한국 개신교계 이단을 연구하거나 상담하는 사역자라면 누구나 그가 남긴 글과 자료의 혜택을 입었다. “탁명환 소장의 자료를 전혀 보지 않고 사역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일반 대학의 학자들조차 한국 개신교 이단을 다룰 때 각주나 인용 표시 여부와 상관없이 그의 자료를 바탕에 둘 수밖에 없다. 그만큼 그의 업적과 공로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오늘날 한국 개신교계 재림주 이단 계보를 바탕으로 책이나 글을 발표하는 이들은 다음의 세 가지를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첫째, 탁명환 소장이 평생에 걸쳐 조사하고 수집한 자료는 실로 방대하다. 현재까지 그보다 더 많은 이단 사이비 단체를 직접 조사해 발표한 사역자는 없다. 따라서 재림주 계보의 맥을 잡을 때 그의 자료는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둘째,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지금보다 환경이나 교통이 훨씬 열악했을 뿐만 아니라, 신변의 위험도 수십 배는 더 높았다. 그럼에도 수많은 단체를 조사해 방대한 기록을 남겼기에, 후대의 사역자들이 이를 바탕으로 연구하고 상담할 수 있게 되었다.셋째, 오늘날의 많은 사역자는 인터넷과 기존 문헌을 수집해 재가공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탁명환 소장의 자료는 현장을 발로 뛰며 피해자와 제보자를 인터뷰하고, 때로는 교주를 직접 만나 작성한 ‘1차 사료’이자 독보적인 연구물이다. 물론 백도교와 백백교(전연예·전용해), 정도교(이순화), 새주파(김성도), 황국주, 백남주, 김백문, 정득은 등은 과거 인물이므로 직접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저서 『기독교이단연구』에서 이들을 다룰 때 출처 표기가 다소 미흡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1) 그럼에도 현장성에 기반한 그의 업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후대가 쉽게 넘어서기 힘든 귀중한 자산이다.두 번째로 기억해야 할 인물은 『한국 메시아 운동사』라는 걸작을 남기고 별세한 선문대학교 최중현 교수다. 잘 알려진 것처럼 선문대학교는 통일교 문선명 교주의 이름에서 따온 학교다. 따라서 최 교수는 이단 연구가 또는 이단상담 사역자라기보다는 통일교계 신흥종교 연구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배경은 이단 사역자 입장에서 한계로 느껴질 수 있지만, 그가 남긴 『한국메시아 운동사』는 학술적으로 매우 탁월하다.최 교수는 탁명환 소장의 저작물을 토대로 한국 개신교계 자칭 메시아들의 계보와 흐름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했다. 이 점에서 그 역시 탁명환 소장의자료에 큰 빚을 졌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의 공헌은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한다. 첫째, 파편화되어 있던 자료들을 하나로 묶어 재림주 계보의 맥락을 완결성 있게 정리했다. 둘째, 기존 연구자들이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통일교·전도관 이전의 인물들(김성도, 백남주, 황국주, 정득은, 김백문 등)에 관한 자료를 대거 수집하여 사실 관계를 자료를 통해 좀 더 깊고 자세하게 확인해 주었고, 재림주 계보 흐름의 명확성을 보여주었다.다만 최중현 교수에게도 명확한 한계는 존재한다. 그는 통일교 신도라는 정체성 때문인지 문선명 교주에 대해서는 끝내 연구물을 발표하지 않았다. 또한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신천지와 이만희 교주에 대해서도 저작물을 남기지 않았다. 재림주 계보의 흐름상 호생기도원의 김종규, 장막성전의 유인구·유재열, 그리고 신천지 이만희로 이어지는 축은 핵심 연구 대상일 수밖에 없음에도 이를 제외했다는 점은 그가 남긴 연구의 아쉬운 한계점이다. 뒷부분에서 언급하겠지만 명확하게 틀린 기록도 발견된다.‘재림주 이단 계보도’의 중요성오늘날 이단을 연구하고 사역하는 후배 사역자들에게는 나아가야 할 과제가 있다. 첫째, 선배 연구자들이 목숨을 걸고 쌓아 올린 1차 자료와 학술적 성과에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둘째, 그들이 남긴 연구물 중 부족하고 미흡한 부분은 연구와 조사를 거쳐 더욱 정확하게 기술하고 보완해야 한다. 셋째, 선배 연구가들이 다루지 못한 이단 사이비 단체를 지속적으로 조사·연구하여 글로 발표함으로써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 넷째, 이단 연구가, 상담가, 강사들은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며 사실을 왜곡하지 않아야 한다.
필자가 이번에 이단 계보도를 만들어 발표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보다 이단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유튜브, 강의, 블로그 등을 통해 이단 계보를 다루는 영상과 자료를 손쉽게 찾아볼 수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전하거나 내용을 왜곡하여 전달하는 사례들을 목격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오류를 바로잡을 필요성을 통감했다. 물론 필자 역시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서로 수정하고 보완해 나가는 학술적·사역적 자세가 중요하다고 본다.
우선, 정확한 명칭 정립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본 연구의 결실을 ‘한국개신교계 재림주 이단 계보도’라 명명했다. 그리고 세간에 유포된 몇 가지 잘못된 견해와 주장에 대해 아래와 같이 바로잡고자 한다.첫째, 호생기도원 원장 김종규가 박태선 전도관 출신이라는 주장이 있다. 출판된 책으로 발표되진 않았으나 최중현 교수 측에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계보도 자료에도 이와 같이 기록되어 있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 자료는 제시되지 않았다. 필자가 김종규의 행적을 추적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가 전도관 출신이라는 명확한 증언이나 사료적 근거는 찾을 수 없었다.둘째, 과천 장막성전의 유인구와 유재열 교주 역시 전도관 출신이라는주장이 있으나, 이는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장막성전 및 신천지 탈퇴자들의 증언에서도 해당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셋째, 호생기도원 김종규와 유인구, 신종환 일가의 접점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궁금증이 일어 추적을 해봤다. 직접 김종규 고향인 강원도 인제군과 호생기도원의 시작점인 서울 상도동도 찾아가 보기도 했다. 그러다 탁명환 소장의 자료에서 이들이 강원도 인제군 남면 부평리 출신의 동향 사람이라는 기록을 발견했다. 다만 김종규와 동향이자 그를 잘 알고 있는 증언자를 인터뷰했을 때 유인구와 신종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증언하여, 이 부분은 합리적 추론의 영역으로 남겨두기로 했다.넷째, 정도교 이순화 교주와 조승제 목사의 저서 『목회여화』에 언급되는 남방여왕은 개신교계 이단에 속하기는 하나, 재림주 이단 계보의 주축을 이루거나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다섯째, 황국주의 제자이자 삼각산기도원·대성심기도원 원장이며 문선명 교주와의 피가름 의혹이 있는 정득은 교주가 평양 광해교회에 출석했다는 설이 있다. 탁명환 소장의 『기독교이단연구』에 따르면, 김백문 교주가 평양에 광해교회를 세웠고 문선명이 이를 탈취하려다 황국주 일파에게 쫓겨난 후 김종화 여인의 집에서 광야교회를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2) 반면 최중현 교수의 자료에는 김백문의 광해교회 설립 기록이 없으며, 또 다른 자료에서는 광해교회를 황국주가 세웠다고 기록한다. 종합해 볼 때 문선명이 황국주 일파에게 쫓겨났다면 광해교회는 김백문이 아닌 황국주가 세웠을 가능성이 크다. 그 이후 평양에 세운 교회는 ‘광해교회’가 아닌 ‘광야교회’라고 명시한 탁명환 소장의 기록이 사료적으로 더 타당하다는 생각이다.여섯째, 전도관 또는 천부교 박태선 교주가 새 이스라엘 수도원 김백문의 제자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 부분도 확인이 안 된 주장이다.일곱째, 1975년 9월 6일에 장막성전 유재열 교주가 구속되었다는 언론기사가 있다. 이 사건은 신천지 이만희 교주의 고소·고발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실제 이단 상담사들도 그렇게 알고 가르치는데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다. 2020년 4월 11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한 당시 사건 담당 김성남 검사는 “고소·고발인 중에 이만희 교주가 없었다”고 확인해주었다. 김 검사의 증언으로 이만희 교주가 유재열 교주를 고소·고발한 사건은 1975년이 아니라, 고소·고발 사건이 있었던 1971년으로 보는 것이 더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이 외에도 최중현 교수 측 계보도 및 국제종교문제연구소의 『한국의 종교단체 실태조사연구』 등에서 무지개증거장막성전 교주의 이름을 앞부분에는 ‘심재원’, 뒷부분에는 ‘심재권’으로 혼용하여 기록한 점도 정확한 확인이 필요한 대목이다.3) 또한 최중현 교수 측 계보도에는 신천지 이만희 교주가 솔로몬 백만봉의 재창조교회에 입교했다가 1980년 3월 1일 말세 예언 불발로 탈퇴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 결별 일은 1980년 3월 14일이다.학술 연구물 내에서도 세부적인 오류가 발견되는 만큼, 효과적이고 공신력 있는 이단 예방과 대처를 위해 향후 지속적인 검증과 교정 작업이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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