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앞서 하나님은 정부에 무엇을 원하시는지, 기독 시민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를 살펴보았다. 이 장에서는 왜 기독교인이 정치 영역에 관여해야 하며 어떻게 참여해야 되는지 답을 찾아가 보겠다.
왜?우리는 책임 있는 시민이 되고 싶어 정치에 참여한다. 선한 의지를 지닌 다른 많은 시민과 함께 우리는 정부가 더 나은 정책을 선택하도록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정부는 사회가 보다 공정하고 인도주의적이며 문명화되게 할 수 있다. 비록 우리가 항상 명백한 성서적 지침을 갖고 있지 못하며, 항상 “주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그런 목적을 성취하도록 돕고 싶다.우리는 정부에 대한 성서적 지침을 알고 있기 때문에 참여한다. 우리는 그런 지침이 하나님의 기대나 거룩한 책임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는 정부 지도자들에게 확실히 전달되도록 하고 싶다. 우리는 사회의 도덕적 분위기를 개선하고 싶어 성서적 지침을 명확하게 한다. 우리는 정부에 대한 성서의 주된 요구가 악을 막고 선에 보응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그러므로 기독교인은 정부가 그런 요구를 이해하도록 도울 특별한 책임이 있다.우리는 침묵이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참여한다. 무관심은 파괴적인 도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가 발언하길 거부할 때 우리의 도덕적 책임마저도 면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가 정부에 발언할 때 정부가 궁극적으로 채택하는 정책들에 대해 우리가 책임지는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이다.우리의 청지기 의식 때문에 우리는 참여한다. 대부분 국가에서 국민은 높은 세금을 낸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우리의 기독교 청지기직은 우리가 세금을 내고 나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우리 세금이 쓰이는 것에 대해 우리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최소한 우리 중 일부는 그렇게 할 책임이 있다. 최소한 우리 중 일부는 제안하고 관심을 표현해야 한다.어떻게?이제 우리는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수준과 형태의 정치참여에 대한 논의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어떻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을까? 정치적으로 벌어지는 일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으로 구성된다. 우리가 정치적으로 무지하다면 어떻게 우리가 책임 있는 기독 시민으로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우리가 실제로 정치적인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 어떻게 우리가 정부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신약성서의 명령(제안이 아니다)을 진지하게 취급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의 견해를 공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 전달하는 것이다. 어떤 기독교인은 그렇게 할 의사나 기회가 없을지라도 직접 공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경우도 있다.자신의 견해를 개인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이나 생각이 없는 기독 시민은 정기적으로 정치권력자에게 발언하는 다른 많은 훌륭한 단체를 후원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투표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기독교인이 투표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유로운 사회에서 투표권은 투표하지 않을 권리도 포함하지만 사려 깊은 시민의 현명한 반응은, 특별히 기독 시민의 반응은 투표하는 기회를 잘 활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한다(잠14:34)”는 성서의 주장을 잘 알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나라의 정치 환경을 정의롭게 하는데 우리의 역할을 다하고 싶어 참여한다. 기독교인은 특정한 기독교 가치 공동선을 위해 법률로 제정되어야 한다고 제안할 권리를 가진다. 하지만 오직 기독교인의 혜택을 위해 입법화를 강제해선 안 된다. 기독교인은 절대로 자신의 유익을 위해 혹은 비기독교인을 희생시키며 기독교인만을 위해 정치를 이용해선 안 된다. 우리는 정치에 왜 참여하며, 어떤 방식으로 참여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알고 실행해야한다.✽ 이 글은 존 레테콥의 『기독교 정치학』 내용 중에 ‘7장 기독교인과 정치참여: 왜? 언제? 어떻게?’(pp.133~151) 부분을 도서출판 「대장간」의 허락을 받아 발췌 및 요약하여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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