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목사님 요즘은 자꾸 조급해집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것이 늦어지면서 모든 것이 늦어집니다. 이성 교제도 늦어지고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그래서 조바심이 납니다. 시시때때로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어찌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고 싶어요.
A세상은 항상 시계 중심입니다. 나이에 따라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조바심이 납니다. 자신이 뒤처진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불안하고 초조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계가 아닌 나침반을 계속 확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빠르게 가는 것보다 바르게 가는 것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적당히 맞춰서 살아가기보다는 나에게 주신 은사와 은혜를 따라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저도 모든 것이 늦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르바이트와 직장생활을 하면서 3년간 많이 방황했습니다. 오랜 방황을 하다가 대학은 23살이 되어서야 들어갔습니다. 군대에 23살 12월 26일에 입대해 24살, 25살의 황금기를 고스란히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26살 봄에 휴가를 나와서 공부하고 제대하자마자 복학해 가까스로 29살에 졸업했습니다. 결혼도 무척 늦었습니다. 제 마음은 29살에는 결혼을 하고 싶었습니다.그러나 현실은 기대치와는 너무 달랐습니다. 마흔이 다 되어가는 38살 12월이 되어서야 결혼했습니다. 박사학위를 받은 것도 늦었습니다. 40대가 되면서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었던 박사 과정에 도전하기로 결심해 시작했고,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학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그 시간 동안 저에게도 직장, 진로 직업에 대한 불안이 자리 잡았습니다. 도무지 풀리지 않는 이성 교제와 결혼문제로 인해 여러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숱한 시간을 초조함과 조바심에 휘둘리기도 했습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저 자신을 보면서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다가 낙오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회의에 빠지고 절망한 적도 수없이 많았습니다.그때 제게 깊은 위로를 준 사람은 믿음의 조상 이삭이었습니다. 이삭은 늦은 나이에 결혼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주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조급하지 않았습니다. 느긋하게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한 것입니다. 기다림과 믿음이 그의 삶에 있었습니다.이삭의 삶은 온통 기다림 투성입니다. 이삭이 우물을 팔 때입니다. 우물이 쉽게 나오지 않는 사막에서 이삭은 힘겹게 우물을 팠습니다. 이삭은 마침내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우물이 펑펑 나오는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대적 블레셋이 나타나 싸움을 걸어옵니다.자신들의 우물이라고 우깁니다. 떠나라고 협박합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에섹이라 이름을 붙이고 그곳을 떠나서 새로운 우물을 팝니다. 놀랍게도 또 우물이 펑펑 나옵니다. 그런데 또다시 블레셋이 괴롭게 합니다. 시비를 걸어옵니다. 그래서 싯나라 붙이고 다시 새로운 우물을 파기 시작합니다. 참 힘든 과정입니다. 자신이 고생해서 팠던 우물을 다 떠나서 빈손으로 시작하는 것은 상실감을 느끼게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원망하는 마음도 들었을 것입니다.그러나 다툼과 대적들로 인해서 팠던 우물들을 포기하고 새로운 우물을 파면서 이삭에게는 이런 확신이 있었습니다. “주께서 친히 예비하시리라” 그런데 이삭은 어떻게 이런 확신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과 함께 모리아산의 경험을 했습니다. 그때 어떤 경험을 했습니까? 결정적인 순간까지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경험을 했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고통스러운 신앙의 여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침묵은 여러 각도에서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순종하기 위해서 이삭과 집에서 출발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려는 그 마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사흘 길을 걸을 때 아브라함의 고뇌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는 노년에 얻은 사랑하는 아들을 번제로 바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애간장이 녹는 그 절절한 아픔과 고뇌를 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 입구에서 종들을 머물게 하고 이삭과만 산을 오를 때에 이미 마음의 중심을 보았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종들이 순종에 걸림돌이 될까 하여 종들은 멈추게 하고 번제에 드릴 재료를 아들에게 지우고 번제 단을 향해 나아가는 그 마음은 사형수가 사형을 집행하려고 갈 때 느끼는 그 마음보다 더 아팠을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은 끝까지 침묵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 단에 올리고 칼로 내려치려는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침묵을 깨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그때 아브라함과 이삭은 눈을 들어 살펴보니 한 숫양의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과 이삭은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셨구나”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하고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침묵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지만 그 말씀을 따라서 순종의 걸음을 옮기는 순간 이미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그래서 아브라함은 그땅 이름을 신앙 고백의 의미를 담아 이렇게 불렀습니다. “여호와 이레”(창22:14) 우리가 순종을 계속 이어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친히 예비하십니다. 이것을 믿을 때 우리는 순종이 쉬워집니다. 이것을 믿을 때 기다림이 쉬워집니다.그러나 현실은 믿음을 선택하기보다는 상황을 자꾸 보게 합니다. 믿음은 두려움의 고개와 조바심의 언덕을 넘어서서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 길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게 합니다. 기다림을 동반한 믿음은 맹신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믿지 못하기에 기다리지 못합니다.믿지 못하기에 내가 내 뜻대로 휘젓고 다니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합니다.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면 언약을 붙잡게 됩니다. 언약을 붙잡으면 그 언약이 이루어지기까지 기다리게 됩니다.현실에서의 신앙과 삶은 즉시 우리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성취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서 우리는 성장과 성숙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믿음이라는 나침반을 통해서 천천히 가더라도 바르게만 가면 그것이 생명의 길임을 확신해야 합니다.빠르게 가는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르게 가는 방향입니다. 오늘 우리도 나침반을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을 향한 신뢰가 사라 것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방향을 점검할 필요성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이것을 확인하려면 시계가 아니라 나침반을 보아야 합니다.시계를 보고 초조해하는 대신에 나침반을 보십시오. 그리고 주께 하듯 하루하루 충실하고 충만한 삶을 살아간다면 주님의 시간에 주의 뜻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 저작권자 (C) 월간 현대종교(hdjongkyo.co.kr), 영리 목적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