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대표 한학자 총재, 통일교) 창시자 문선명씨의 사망 3년 추모행사가 지난 8월 30일 경기도 가평에 위치한 청심평화 월드센터에서 열렸다. 행사 참석자들은 족히 3만 명이 넘어 보였다.
문선명 사망 3년 추모행사는 한학자씨의 헌화로 시작을 알렸다. 유경석(통일교 한국회장)씨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문선진(문선명씨의 5녀, 통일교 세계회장)씨의 기념사가 이어졌다. 이수성 전 국무총리와 아노테 통 키리바시 대통령이 각각 추모사를 발표했다. 추모행사에는 북한의 김양건 위원장(김정은 제1비서)이 조화를 전달해 문선명씨의 유가족들에게 애도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문선명씨 사망 1년 때와 마찬가지로 3남 문현진씨, 4남 문국진씨, 7남 문형진씨는 추모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형진씨는 8월 30일(미국시간) 미국 생츄어리처치에서 독자적으로 문선명씨 사망 3년 추모행사를 진행했다.
미국 생츄어리처치 본부장 팀 엘더는 8월 19일 간증보고 시간에 “청평에도 어느 정도 사람들이 모이겠지만 거기에는 아버님(의) 영이 안 계실 것입니다. 아버님께서 안 계시는데 대신자, 상속자(문형진씨)께서 무엇 때문에 갑니까? 아버님은 여기 계실 것입니다”라며 청평의 추모행사를 비판했다.
신격화 작업에 힘쓰는 한학자 유경석씨는 8월 2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문선명씨 별세 이후 3년간 “한학자 총재가 조용하고 온화하게 화합과 균형으로 가정연합을 이끌었다”며 “지역민이 요청하는 종교로 가까이 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한씨는 조용하지 않았다. 한씨의 준비된 계획이었을까? 통일교는 조금씩 변화를 이루어갔다.
문선명씨가 죽고 통일교는 ‘왕자의 난’이라 불릴 정도로 법적 분쟁과 후계 갈등을 겪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교권은 한학자씨와 그 측근들이 쥐게 되었다. 본래 문선명씨의 아들들이 삼분하려고 했던 통일교의 기업, 종교, NGO 영역에 한씨의 측근들로 재정비했다. 통일교재단 이사장과 통일그룹 회장직을 맡았던 문국진씨의 자리는 박노희 현 통일그룹 회장이 이어받았다.
천복궁교회 당회장과 미국총회장을 역임하던 문형진씨의 자리는 양창식 통일교 한국총회장이 가져갔다. 원모평애재단 이사장은 김민하 전 중앙대학교 총장이 부임했다. 한씨는‘통일교’의 공식 명칭을‘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변경해 ‘참어머님’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강화했다. 2015년 2월 22일 기원절을 통해 신격화 작업을진행했다.
통일교국가‘천일국’건립과천일국3대경전‘천성경’,‘ 평화경’,‘ 참부모경’을 완성함으로 신격화 작업에 힘을 더했다. 한학자 총재의 집권 후 대대적인 교단정비로 교리와 조직을 갖춰 제법 그럴싸한 종교로 구색을 갖추는 듯했다.
한학자 VS 문형진 한학자씨의 집권에 밀려 재야로 물러났던 문형진씨가 입을 열었다. 2015년 1월 18일 ‘침묵을 깨고’라는 설교를 통해 현 통일교를 정면으로 공격했다. 문형진씨는 한씨 측 교권자들을 “돈 때문에 붙어 있는 자들”, “이면의지배자들”, “사탄의영에씌인자들”등의표현을 써가며 한씨의 세력들이 문선명씨를 배신했다며 비난했다.
문형진씨는 동년 2월 8일“지금 같은 시기에 이러한 책임(후계자)을 지고 있는 나는 악의 세력을 마주보고, 악을 규정할 것이고, 대항할 것이고,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문형진씨는 김효율씨, 김효남씨, 안효열씨, 김만호씨, 양창식씨, 석준호씨, 김영휘씨, 유경석씨 등을 ‘승계자’의 권한으로 직책에서 파면하면서“이단교리에서 해방되었다”고 선언했다.
통일교는 세계회장직을 맡고 있던 문형진씨를 면직하고, 5녀 문선진씨를 세계회장으로 세웠다. 하지만 문형진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도리어 문형진씨는 3월 15일 미국 생츄어리처치 설교를 통해 “만왕의 왕, 절대적 주체인 참부모님에게 왕위를 상속받은 나 문형진은 참어머님을 착취와 속박으로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천일국에 대한 권위와 권한을 참어머님으로부터 면한 것을 선포”했다. 한학자씨의 권한까지 박탈하는 선언을 한 것이다.
4월 12일 미국 생츄어리처치 설교에서 한학자씨에 대한 신격화를 “영적타락”으로 일갈했다. 문형진씨는 모친이 “완전히 사탄의 주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4월 21일에는 ‘참아버님의 권위로 돌아가기 위한 축복결혼식’이란 이름으로 문형진씨의 주도하에 축복결혼식, 일명 합동결혼식을 독자적으로 진행했다.
문형진씨가 직접‘합동결혼식’을 집례했다는 건 문형진씨는 모친의 통일교를 통일교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문형진씨의 선포로 일본의 통일교도 동요하고 있다. 일본 통일교 구마모토교구 신도 48명은 일본 통일교협회 도쿠노회장 앞으로 집단 탈퇴서를 제출하고 문현진씨의 일본 생츄어리 처치로 옮겼다. 탈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영선 (총장통일교대책협의회은“한국에 거주하는 일본 통일교인들이 한국 통일교에 출석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사무총장은 문형진씨와 한학자씨의 대립을 두고“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통일교 간부들이 한학자씨를 앞세워 문형진씨와 대립하는 것으로 보이며 향후 교권투쟁이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견해를 밝혔다.
덧붙여“나이가 많은 한학자씨가 사망하면 통일교 측에서는 앞세울 사람이 없(어) 혼란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죄가 없다는“참가정”에서, “참어머니”와 “참자녀”즉 모자간의 다툼이 일어나고 있다. 문선명 사후 3년‘가정연합’의 이상모델인 ‘참가정’자녀가 모친을 정죄하는 형국이다.
현재 통일교는 표면적으로 문형진씨와 한학자씨의 교권싸움으로 보인다. 하지만 교권에서 축출은 되었지만 영향력을 확대하며 문선명씨의 평화 정신을 잇고 있다고 주장하는 문현진씨 또한 통일교 권력 투쟁의 한 축으로 등장해 삼파전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