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에게 직장은 자기 삶의 터전입니다. 직장은 단지 경제적인 목적만을 위해서 일하는 곳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곳이고, 삶의 의미와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는 곳입니다. 인간에게는 가족과 함께 행복을 나누는 가정도 중요하지만, 가정 못지않게 중요한 곳이 직장입니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가정보다 직장에서 물리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직장의 동료는 가족처럼 친근하고,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관계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직장에서 기독교인이 이단 신도의 동료 직장인을 만난다면, 일단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고, 게다가 상사이기까지 하다면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일단 기독교인이 직장에 취업하려고 하는데, 그 직장이 이단이 경영하는 직장이라고 하면, 아무리 취업이 어려운 시대라고 해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이단이 정통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되는 것은 단지 교리적인 차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혼란케 하고, 신도들의 정상적인 삶을 왜곡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단의 직장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이단이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게 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직장이 이단이 경영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들어갔다가 나중에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기독교인으로서 사직을 고려해야 할 것인데, 이단이 경영하는 직장이 분명하다면 처음부터 취업의 대상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직장이 이단과 전혀 상관이 없는데, 상사가 이단이라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장이란 이윤 창출에 기여하는 구성원으로 유지되는 이익집단입니다. 물론 직장이 이익집단이라고 해서 사회적 공익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공익에 기여하지 못하는 직장은 오래지 않아 소멸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냉정한 질서입니다.
이단의 상사가 직장의 구성원으로서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면, 기독교인은 다른 상사와 다를 바 없이 대해야 할 것입니다. 이단의 신도 역시 직업의 자유를 지니고 있고, 자기 역할을 통해 직장 고유의 목적에 기여할 수 있으며, 그의 이단 신앙은 사적인 것으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단의 상사가 불의한 일을 도모하자고 한다든지, 회사의 이익보다 자신의 사익만 극대화하고 있다든지, 또는 부정부패의 핵심에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그가 이단이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부정부패 불의 때문에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직장 내에서 용납할 수 없는 부정부패 불의의 상황에 직면한다면, 그가 이단이든 아니든 구별할 것 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법적인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그것이 상식입니다. 나아가 이단의 상사가 종교적인 이유로 기독교인의 임금이나 인사를 차별한다면, 그것 역시 법과 일반 상식의 차원에서 대처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문제는 이단의 상사가 자신의 신앙을 기독교인이나 주변 동료들에게 전파하거나 강요할 때입니다. 이때 기독교인은 자기 신앙의 정체성 위에서 당당하게 처신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는, 상사라고 할지라도 이단 전도에 대해서는 ‘아니오’라고 명백한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 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의 헌법은 신앙을 전하는 자유도 보장하지만, 신앙을 거부할 자유도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상사가 신앙하는 이단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이단의 특징이 무엇이고,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개별적으로 논쟁하며 서로의 감정을 상하기보다는 기독교인의 신실함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상사에게 자신의 기독교인 됨을 삶으로 보여 줌으로써 감동을 줄 때 상사의 이단 신앙에 변화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기독교 이단 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이단에 빠진 상사를 개인적으로 설득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이단 전문가를 만나도록 돕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직장이 이단과 전혀 상관이 없는데, 상사가 이단이라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장이란 이윤 창출에 기여하는 구성원으로 유지되는 이익집단입니다.
물론 직장이 이익집단이라고 해서 사회적 공익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공익에 기여하지 못하는 직장은 오래지 않아 소멸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냉정한 질서입니다. 이단의 상사가 직장의 구성원으로서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면, 기독교인은 다른 상사와 다를 바 없이 대해야 할 것입니다.
이단의 신도 역시 직업의 자유를 지니고 있고, 자기 역할을 통해 직장 고유의 목적에 기여할 수 있으며, 그의 이단 신앙은 사적인 것으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