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현대인들이 성에 대해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인 가르침을 받아왔기 때문에 기독교인일지라도 창세기에 나타난 성경적 성의 의미와 목적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심지어 리더들에게조차 성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가 뇌에 새겨져 아이들에게 성경적 성교육을 시도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경우를 많이 봅니다. 성교육을 통해 리더들도 성경적 성 가치관을 배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시며 가정의 축복을 약속하셨지만, 세상은 쾌락을 누리며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라고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왜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는지 그 목적을 정확히 알려 줍니다. 창세기에서 말하는 성은 나의 만족이나 종족 번식이 아닌 생명의 소중함, 가장 아름다운 교회와 가정, 하나님과 하나 됨과 같이 부부가 하나 됨, 하나님 나라의 확장, 그리고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창조의 신비입니다.우리는 하나님, 그리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관계를 갈망하도록 지어졌습니다. 특히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하나 됨을 경험하고, 부부가 서로 하나 됨을 경험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둘째,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생명을 죽이는 낙태는 너무나 큰 죄입니다. 이러한 죄를 짓지 않도록 아이들에게 생명의 귀중함을 어릴 적부터 가르쳐야합니다. 세계 어디를 봐도 합법이든 불법이든 낙태가 급증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성경에서 낙태에 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태아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는 성경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시139:13~16)라는 말씀에서 태아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태아를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생명체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바로 내 몸을 내것으로 여기는 데서 기인하며, 태아가 내 몸 안에 있기에 자기 소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내 몸 안에 있는 생명을 인격체로 여기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셋째, 반항의 사춘기가 아닌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신앙의 사춘기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사춘기는 어른의 문턱에 들어서면서 부모님의 영향력에서 독립하는 것을 조금씩 배우는 시기입니다. 이때 부모님과 교회는 아이들에게 어른이 되면서 본인의 모든 말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과 이 악한 시대에 어떻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훈련되어 믿음의 멋진 남자와 현숙한 여인으로 자라나 믿음의 가정을 이루는 남편과 아내가 되는 데 필요한 것을 배워야 합니다.마지막으로, 사랑은 감정이 아닌 의지입니다. 미디어를 통해 보듯이 너무나도 얄팍한 감정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결혼생활은 절대로 행복하지 않습니다. 아주 쉽게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또 쉽게 헤어지는 이유는 ‘사랑’의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로 상대방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며 견디고 이해해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의지이며 훈련이며 노력입니다. 가장 큰 사랑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고 그 사랑으로 상대방을 사랑할 때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 몸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믿고 순결하게 지키는 것 또한 의지입니다. 성교육을 통해 훗날 믿음의 가정을 이루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우리의 다음세대를 축복합니다.
*이 글은 이진아 전도사의 『십대를 위한 성경적 성교육』 내용 중에 ‘2장 십대를 위한 성교육 교재’(pp.80~83) 부분을 발췌 및 요약하여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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