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성경에는 분명 그런 것들이 있다. 말씀을 선포한 당사자와 그것을 들은 청중은 무슨 말인지 잘 아는데 그것을 기록으로 읽는 먼 후대의 우리는 그 공유된 상황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기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지 못한다. 바울이 쓴 서신도 마찬가지다. 발신자인 바울 자신과 그 서신을 받는 수신자인 교회공동체 성원들은 서로 만난 사이이고, 서로 듣고 말하고 배우고 소통하며 여러 공통 정보를 함께한 사이였기에 대강 말해도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점에서 이천년 가까이 멀리 떨어져서 그가 문자로 남긴 서신을 읽는 오늘날의 독자는 어느 특정 대목에서 그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왜 그렇게 표현했는지, 그 말의 이면에 담긴 은밀한 메시지는 무엇인지 일차 독자들에 비해 인식의 감도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 기사는 현대종교 2014년 10월호의 일부입니다. 기사의 전문은 유료회원 가입 후 PDF 파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검색어 : 평신도를 위한 신약읽기관련기사[ 논단 ] 더디오 생각[ 논단 ] 모든 사람을 위한 모든 것[ 논단 ] 천진한 어린이와 몽매한 우민의 역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