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가치 있고 귀한 일들을 감당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지금처럼 의미 있고 소중한 일들을 위해 더욱 열심을 다해 주십시오! 그리고 먼 훗날 저희 교회가 현대종교를 섬겨드렸다는 사실이 우리 모두와 다음 세대 우리 아이들에게 큰 기쁨이자 자랑이 되게 해주십시오!’- 올해 후원을 결정한 모 교회의 편지 내용 중 -1. 인트로10년쯤 됐을까? 정확한 기억이 나진 않지만 ‘천국과 지옥’에 관한 간증 집회가 성행했던 적이 있었다. 내세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던 천국과 지옥에 다녀온 이들이 당시엔 왜 이리 많았던지. 그것도 민망했으나 더욱 당황스러웠던 것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성경에서 엇나간 간증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천국의 공간을 아파트 평수로 묘사한 이도 있었는데 말 그대로 ‘부끄러움은 모두 나의 몫’이었다.최근 <지옥>이란 넷플릭스 영화(또는 드라마)로 인해 자연스레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당시 간증자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들 있을지? 그들이 그토록 간절하게 전하고 생생하게 봤다던 천국이나 지옥으로 돌아갔을지, 아니면 더는 그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 하지 않을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한 이는 본지의 비판 기사로 인해 소송으로 다투기도 했으나 결국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천국, 지옥 간증을 접고, 찬양 사역으로 노인들을 열심히 섬기며 살고 있다. 아무튼 1992년 다미선교회의 휴거 소동 이후, 또 하나의 해프닝으로 기억될 사건이지 않나 싶다.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그 이야기들을 새해 첫 칼럼으로 택한 이유는 올해부터라도 남은 인생을 좀 더 잘살아보자는 협박성(?) 의미를 담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에 관한 명확하고 신학적인 정리는 후에 본지 편집자문위원들을 통해 나눌 수 있도록 하겠다.2. 영화 <지옥>오랜만에 영화 이야기를 들고 왔다. 최근 <지옥>이라는 넷플릭스 영화가 <오징어 게임>에 이어 연일 화제다. 인간이 ‘죽음’이라는 것을 예상치 못하게 고지받았을 때 얼마나 잘 받아들일지 상상하며 작품을 구상했다는 연상호 감독. 그가 이전에 애니메이션 <사이비>(궁금한 분들이 있을까 싶어 내용을 밑에 담아봤다)라는 작품을 제작했던 적이 있었기에 종교에 관심이 많다고는 생각했으나 <부산행> 등으로 스타 감독 군에 오르면서 다시 종교를 주제로 한 작품을 제작할 것이라고는 예상 못 했다.사이비종교라는 민감한 주제를 선택한 배경에 대해 그는 언론을 통해 “종교와 인간의 관계는 인간의 모습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매개체”라며, 아울러 “<지옥>이 만들어낸 생소한 세계관에 빠져들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고, 보편적 대중보다는 이 같은 장르를 깊게 즐기는 분들이 좋아할 거로 생각했는데 예상 밖에 많은 분들이 작품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아마 그 같은 이유는 작금의 코로나 시기가 한몫했지 싶고, 코로나19와 맞물려 여러 이단이 드러나면서 대중의 마음에 더욱 각인되었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코로나 전이였다면 이 정도의 흥행까지는 어려웠을 수도 있었을 게다. 영화는 흥미와 대중성을 넘어 다양한 생각을 하게 했다는 평이 많은데 그 이야기는 뒤에 다뤄보겠다.✽ 수몰 예정 지역인 마을에 교회가 새로 생긴다. 기적을 빙자해 마을 주민들의 보상금을 노리는 장로와 그를 돕는 목사, 그들의 정체를 유일하게 알고 있는 주정뱅이 폭군,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사람들이 결국 충돌하고야 마는데…. 영화 <사이비>는 본지의 일과도 관계가 깊어 보여 기자들과 함께 관람했더랬다.이단이나 사이비(종교 내지는 다른 어떤 것이라도)의 문제가 나와는 상관없을 것 같으나 팬데믹처럼 그리 멀리에 있지 않고 우리 가까이에, 또는 우리 안에 있을 수 있다는 교훈을 담았다(고 생각한다.). 거짓을 말하는 선한 자와 진실을 말하는 악한 자를 대비시키며 인간의 양면성을 꼬집기도 하고, ‘과연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 진짜일까?’라고 진리를 향해 가고는 있으나 문제가 적지 않은 한국교회가 이젠 아무리 진리를 외쳐도 믿지 않는 현실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선과 악의 경계, 그리고 마을을 구원할 유일한 ‘믿음’ vs ‘믿음’을 의심하는 한 남자를 주축으로 한 영화는 작금의 한국교회와 그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믿음’에 대한 날 선 물음에 당장은 정답을 말하지 못하나 조금씩 근접해 가는 것만으로도 그나마 다행이지 싶다.3. 성경에서의 의미본지편집자문위원인 이승구 교수는 ‘작금의 교계에는 사후 상태에 대한 이상한 간증과 그와 관련된 책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이에 성경이 말하는 사후 상태의 정확한 모습을 진술하여 성경적 사후 상태에 대한 이해를 분명히 하고,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생각을 가지지 않도록 하는 일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며 본지에 투고한 그의 글 ‘예수 믿는 이는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의 내용 중에 영생과 지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기본적으로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이미 이 세상에서도 영생을 누리고 있고, 죽은 후에도 그 영혼이 영생을 누리며, 또한 그 후에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여 영원히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영생과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부활체가 누리는 영생의 극치의 빛에서 사후 상태를 이해해야 한다.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 구주로 믿지 않는 이들은 지금 여기서도 영생을 누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죽기 전에 그리스도를 개인적 구주로 영접하지 않는 한 사후에도 ‘하늘’의 복락에 참여할 수 없으므로 그 영혼이 ‘지옥’의 고통을 미리 경험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영원 상태에서도 그 몸과 영혼이 ‘지옥’의 형벌을 영원히 받게 되는 영벌의 상태에 있게 될 것을 분명히 의식하면서,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천국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써야만 한다고 했다.
4. 사전적 의미세상에서의 해석은 큰 죄를 짓고 죽은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하고 끝없이 벌을 받는 곳을 ‘지옥’이라 말하고 있다. 죄업을 짓고 매우 심한 괴로움의 세계에 난 중생이나 그런 중생의 세계. 또는 그런 생존으로도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내세의 것만이 아닌 현세에서도 아주 괴롭거나 더없이 참담한 광경, 또는 그런 형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도 사용되고 있다.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인데 특히 현세의 지옥에 관한 이야기가 눈에 밟힌다.굳이 지면을 통해 나눌 필요가 있을까 싶은 불경스러움이 다분한 호기심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의 공식이 아닌 좀 더 본질적인 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하지 않나 싶고, 살면서 내세의 것에만 관심을 두고 사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의 물음도 던져보고 싶었기 때문이다.더불어 신앙의 첫 마음을 떠올려보며 믿음과 삶의 방향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진단해보고 싶었던 이유도 있고. 지옥은 정말 있는가? 그럼 어디가 지옥이고, 어떤 이들이 가는 곳이며, 또 어떤 형태의 것일까?5. 다시 영화로 돌아와영화 <지옥>에는 최근 활동 중인 이단들과 관련 현상들이 담겨 있다. 심지어는 본지를 패러디한 건진 잘 모르겠지만 극 중에 등장하는 언론사가 본지를 떠올리게도 했다(그렇다면 더 재미있게 만들어보거나, 조금 의미 있게 비틀었어도 좋았을 텐데, 이건 뭐! 발행인인 목사를 교주로 만들어 놓고는 무심하게도 영화에 더는 비춰주질 않는다.).영화 <사바하>에서는 주인공인 목사를 세상의 것에만 욕심이 과한 모습으로 비추다가도 종국 사이비종교의 문제를 최선을 다해 풀어가는 것으로 나름의 반전이 있긴 했으나 <지옥>에서는 그렇다 할 의미가 없던 것이 아쉽다면 아쉬운 부분이었다. 극 중 ‘미래종교’라는 이름에 본지 이름이 겹쳐진다며 몇몇이 연락을 주기도 했는데 최근 모 언론과의 인터뷰 중 이 부분이 기분 상하지 않았냐 하기에 ‘청와대나 정치가 코미디 소재로도 사용되는 세상에서 뭐! 이까짓 것쯤이야!’라고 말했으나 마음이 편치는 않다. 그래도 ‘영화는 영화일 뿐’이니 애써 마음에 담아둘 필요는 없겠다.그 외 흥미로웠던 부분은 교주 측근인 기획팀이 교주와 간부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허투루 하지 않고, 대중에게 각인될 수 있는 모습들로 연출, 연습하는 장면에선 모 대형교회 담임 목사의 측근들이 설교(작성) 팀, 이미지 메이킹 팀, 신도들 반응 체크 팀 등으로 활동한 것이 떠올랐다.단체의 이름인 ‘새 진리회’는 작금의 ‘대순진리회’가, 단체의 마크는 통일교 마크와 거의 흡사함이 눈에 띄었고, 급박한 종말관 등으로 불안에 떨게 하며 접근, 포교하는 ‘하나님의교회’도 물론이다. ‘새 진리회’의 열성적 지지자를 자처하며 신의 뜻을 앞세워 테러까지 일삼는 ‘화살촉’이라는 단체는 다름 아닌 못된 선전, 선동에 능한 이단 옹호자들 내지는 이단 옹호 언론을, 전체 흐름은 요즘 기승 중인 음모론과 닮아 있었다.그런데 여기서 음모론자들의 해석독점이라든지 온갖 근본주의가 성행하는 시대를 성찰하는 등 종교적, 사회적 메시지가 적지 않은 것만큼은 높이 평가하나 딱 거기까지이다. 그 의미들을 빼고 나면 황당한 설정이 가득한 저승사자가 등장하는 호러이며, 오컬트이기에 진지한 종교 문제나 기독교에 빗대기란 쉽지 않다. 그저 감독의 개인적인 세계관이라 할 수 있겠다.✽ 최근 영화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가 두 번 있었다. 코로나19 등으로 잠시 쉬고 있는 영화감독과 스텝들을 대상으로 한 자리였다. 비기독교인이 대부분이었던 지라 강의가 쉽진 않았으나 나름 할리우드키즈의 삶을 살아왔던지라 열심히 준비했고, 또 열심히 강의했다. 그래서인지 관심을 둔 이들이 여럿 있었(던 것 같)다.강의 말미에는 현실이 영화 같고, 영화가 더 현실 같은 세상에서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가 반드시 나와주기를 바랐다. 진심이다. 더불어 더는 이단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영화인들이 동기부여를 마련해줬으면 하는 소망도 전했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가 해야 할 일을 세상 사람들이 주도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기에 이율 배반이긴 하나 독자 제현께도 같은 부탁을 드리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6. 현세의 지옥의도와는 다르게 두서없는 글이 된 것 같아 다시 처음의 고민으로 돌아와 마무리를 짓고자 한다. 작금의 시대가 더 지옥 같다는 이야기가 마음을 두드렸을까. 영화에서 광신도들이 ‘새 진리회’라는 단체에 반대하는 이들을 죄인이라며 폭력을 행사하고, 광기 어린 어조로 타인의 죽음을 조롱하며, 급기야 공권력조차 이들의 협조자로 전락하는 모습을 생지옥으로 비춘 것처럼 현세에도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아픔과 눈물을 흘리며 사는 이들이 있다.넓게는 당장 직면해 있는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환경문제와 가난과 질병의 문제들, 경제 양극화로 고통받는 수많은 이들이 그렇고, 가까이에는 자녀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비정한 부모들과 반대로 키워준 부모를 살해하는 등의 패륜적인 사건과 노동의 현장에서 처참하게 죽어간 젊은 실습생들과 최근 3주기를 맞이한 김용균씨 등의 노동자들이 그러하다. 사업의 실패와 속한 곳에서의 왕따 등으로 시대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서 육체, 정신적 질환 등으로 인해 생을 마감하고자 하는 이들이 과연 천국 등을 생각할 겨를이 있을까. 이단, 사이비종교에 빠진 피해자 가족들로부터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인 것 같다며, 죽고 싶은 심정을 토로할 때 이들에게 지옥은 저 멀리에 있을 것 같지는 않다.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매일 뉴스에서 전해지는 이 같은 소식들을 접하면서도 어떠한 충격과 고뇌도 없이 무감각해져 버린 우리들의 모습이지 않나 싶다. 과연 이러한 일들에 회복과 치유가 가능할지, 그저 모른 체하고 우리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건지, 풀 수 없는 문제들이 너무 많아 답 대신 고민만 깊어지고 있다.그래도 ‘믿는 이’라는 그 하나의 이유로 주변의 기대와 시선이 고정되고 있음을 뿌리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그것이 신앙인의 숙명이고, 소명이기에 선택의 여지도 없다. 올해에는 실수와 한계투성이였던 교회 공동체가 다시금 기적의 반전을 꾀해갔으면 하며, 부족한 본지도 이단대처 문제 외에 이제는 주변도 돌아보며 섬김과 나눔의 행함을 올해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자 한다.모든 것에 답이 보이진 않아도 세상에 소망으로 오신 예수를 전하는 일에 더욱 열심일 때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의 것을 준비해주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올해의 끝자락에는 반드시 코로나의 종지부를 찍고, 그간 버티고 이겨냈던 매 순간이 더욱 귀한 기쁨과 감사로 이어지길 소망해마지않는다.앞에 교회의 편지는 본지가 열심히 살아가고, 또 최선을 다해 사역하는 이유이다. 거룩한 부담감을 안고 그 같은 바람에 더욱 부응하는 삶을 살고자 또다시 힘차게 한 해를 잘 열어가도록 하겠다.아울러 올해는 신천지 등 이단과의 전투도 여전히 중요하나 어쩌면 이단보다 더 교묘하고 악랄하기 짝이 없는 종교 브로커 황규학 같은 이단 옹호자들과도 긴 싸움을 벌여야 할 것 같다. 최근에 그는 이단 사역자들을 음해, 비난하는 내용을 짜깁기해 책을 냈다. 내용은 예상대로 가관이었다.하나만 살펴봐도 책의 수준을 미리 짐작할 수 있는데, 작년 모 교회의 강의 중 선친의 살해범이 아직 붙잡히지 않았다고 한 것은 선친 사건의 공범과 배후 등이 밝혀지지 않았고, 사건의 실체가 여태껏 드러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한 것임에도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으로 몰아가며 굳이 책에까지 담아낸, 비난을 위한 비난을 더는 말해 뭐할까.아무튼 대부분 내용이 반드시 법적인 문제 제기가 필요한 사안이어서 본지 법률고문인 김혜진 변호사와 소송을 진행하는 중에 있다. 여태껏 이단보다 더 문제 많았던 이단 옹호자와의 싸움은 시작도 못 했지 싶다. 이제라도 늦지 않은 심정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도 이단 대처의 문턱에 다다르는 또 하나의 관문 통과와 같은 일이라고 믿는다.한편으론 나름 평온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27년 사역하는 동안 인간적인 결함이 더없이 많았을텐데도 비난거리를 겨우 3개밖에 찾지 못한 것에 나름 열심히, 잘 살았구나 싶은 자긍심이 생겨서다. 탁 목사 같은 경우도 억지스럽게 문제 하나 만들고자 했던 것 외에 더는 없으니…. 머리를 총동원해서 좀 더 많은 티나 들보를 쥐어짜듯 만들고자 했을 텐데. 나름 ‘황규학! 땡큐!’다.반대로 황씨의 문제점을 살펴보자면 지면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이다. 여러 사건을 통해 잘 알려진 것처럼 전과자이기도 하니 여전히 ‘○ 묻은 개가 ○ 묻은 개’나무라는 형국이다. 그런데 황씨만큼 못 된 자들이 또 있다. 황씨의 배후로 지목된, 사회의 조롱거리가 되었던 모 대형교회가 있고, 그 같은 책에 추천사를 써준 이들과 아울러 이 책의 광고는 물론이거니와 여전히 이단이나 이단 옹호자들의 기사나 광고를 게재하는 「ㄱ일보」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진 못할 것이다.공교롭게도 올해의 사자성어 ‘묘서동처(도둑 잡을 자가 한패가 됐다는 뜻)’는 그들에게 딱 들어맞는 고사성어이지 않나 싶다. 예상컨대 그 책은 한국교회의 유익이 아닌 이단들의 방패막이로 사용될 것이며, 책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이단으로부터 마련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에 독자 제현들은 호기심에라도 관심을 두지 않길 바란다. 교회라는 울타리에 같이 살아도 실상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또 전혀 다른 예수의 길을 걷고 있다. 마치 천국과 지옥처럼.- Copyrights ⓒ 월간 「현대종교」 허락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