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나라는 비선 실세 최순실의 지시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결과 온 국민은 대통령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것에 분노와 허탈감을 가지게 되었고, 전국 단위의 촛불시위를 수차례 진행해 분노를 분출하고 있다.
취임 초 박 대통령은 모든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화시키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비선 실세를 통해 국정을 운영하는 비정상적 정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대통령뿐만 아니라 개개인에게 종교와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 기능을 하는가를 실감하고 있다.
행복심리학자들은 사람의 행복에 필수적인 요소로 사람(관계)과 밥(음식), 종교, 그리고 대화를 꼽는다.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오순도순 대화하는 것보다 더 행복한 장면을 떠올리기가 어렵다. 그런데 그 배후에 어떤 종교를 믿느냐가 삶의 질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학자 폴 틸리히는 종교를 인간의 ‘궁극적 관심사’(ultimate concern)라고 표현했다.
종교적 세계관은 왜 중요한가? 한 사람의 정신적 세계를 지배하는 세계관, 즉 종교는 삶을 지배하는 정신적 지주와 같다. 우리의 믿음과 언행은 세계관에 의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세계관은 마치 우리가 쓰고 있는 색안경과도 같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다. 종교는 우리에게 의미와 목적을 제시한다. 종교는 사람들에게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을 갖게 하며, 인간의 경험에 가장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는, 중대한 삶의 뼈대를 제시한다. 따라서 종교는 삶의 목표와 방향을 안내하며,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좌우한다.
세상에는 전통적인 정통 기독교와 같은 고등종교가 있고 무속신앙과 (신천지, 하나님의교회, 구원파 등) 사이비 기독교 이단을 포함하는 하등종교가 있다. 고등종교는 건강하고 풍성한 삶을 약속한다. 그러나 천부교와 영세교처럼 하등종교는 삶을 병들게 하고 피폐케 하며 불행하게 만든다. 하등종교는 추종자에게 이기적인 복을 약속한다. 그래서 최순실은 자신의 딸과 언니, 조카의 부귀영화를 위해 대통령을 이용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이비종교의 피해자이지만 그는 온 국민에게 엄청난 아픔을 안겨준 가해자가 되었다. 고등종교는 우리를 “성령 안에 있는 의(올바른 관계)와 평강과 희락”(롬14:17)으로 인도하지만, 사이비종교는 그 추종자를 혼란과 파괴와 불행으로 이끌 뿐이다.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고 경고하시면서, 교주의 열매를 보면 그가 사기꾼이라는 것을 분별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마7:20). 무엇보다도 바울은 거짓 선지자들은 마땅치 않은 것을 가르쳐 가정을 무너뜨린다고 경고하였다(딛1:11). 베드로는 사이비종교 지도자들이 모두 무식한 자들로서(벧후3:16) 연약한 심령에게 거짓된 “구원의 확신”을 주입시킬 뿐 아니라, 탐심과 호색의 비윤리적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벧후2:1~3).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엄청난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는 박근혜 앞에서 최태민씨가 육영수의 영혼에 빙의됐다며 그녀의 표정과 음성을 그대로 재연하는 최면술을 사용했다고 한다. 최태민이라는 무당 주술사는 육영수 여사의 (거짓된) 현몽을 미끼로 정신적으로 심약해진 영애 박근혜에게 접근하여 영혼과 몸, 그녀의 삶을 조종하고 지배하였다. (필자도 구원파 이단에 빠져있던 8년간 교주 유병언의 지시를 따라 생활했었다.) 최태민은 전혀 신학을 한 적이 없는 가짜 목사였으며, 자신을 칙사, 단군, 미륵이라고도 했다. 최태민은 기독교, 천주교, 불교, 천도교를 혼합한 사이비종교 영세교의 교주로 행세했으며 여섯 명의 부인을 두었다. 여러 차례 이름을 바꿔가며 자신을 위장했다. 무엇보다 교주는 박 대통령이 가족을 가까이하면 대통령이 되는 것이 부정 탈 수 있다며 친동생 지만과 근령을 멀리하도록 유도하였다. 무속신앙에 빠진 박 대통령에게는 최순실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 되었다. 검찰 조사에 의하면, 대통령은 사소한 일까지 일일이 최순실에게 물어서 처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종교적 신앙은 삶에 영향을 미친다. 건강한 종교는 가족관계를 강화시켜주지만, 사이비종교는 가정을 무너뜨린다.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에서 종교적으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사이비종교는 거짓의 아버지 사단의 조종을 받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이다(요10:10). 그러나 건전한 종교는 우리의 삶에서 여러 가지 순기능을 한다. 바른 교훈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유익을 준다.
첫째, 건강한 종교는 의미와 목적을 제시한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약5:13). 가장 행복한 부부는 함께 기도하는 부부다. 종교활동에 적극적인 학생은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학업성적도 좋을 뿐 아니라 대학생활에 대한 만족도도 높다. 사람은 가족과 나라,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의미를 찾는다.
둘째, 종교는 사회적 지지를 제공한다. 우리는 교회에서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자아수용을 경험하고,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법을 배운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친교 활동이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온천수 구실을 한다. 종교는 소속되고픈 욕구, 포함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히13:16).
셋째, 종교는 심리적 성숙과 통합을 증진한다. 자기 이해와 성격통합, 갈등해소에 도움을 준다.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사람들, 그러니까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와 보살핌으로 우리를 구원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존감이 높을 뿐 아니라 결혼생활도 더 행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넷째, 종교는 인생의 고통과 역경에 대한 독특한 대처방법을 제공한다. 신앙은 고통과 죽음, 그리고 환란에 대처하게 도와준다. 사후의 삶에 대한 믿음은 정신건강에 직접적으로 일관되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고통에는 뜻이 있다. 기독교는 결국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만사가 잘 될 것이다”라는 희망을 제시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이다(롬8:28).
다섯째, 건전한 종교는 건강한 생활방식을 제시한다. 일상생활에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계명의 형태로 제시한다. 술, 담배를 덜 소비하게 하며 절제된 생활습관을 따르게 한다. 범사에 감사하게 하며 그리스도인은 매 순간 더 행복하고, 사교적이며, 활기차고, 자족한다.
사도 바울은 고백한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4:11). 지도자는 물론 국민도 하등종교를 멀리하고 고등종교를 선택해야 마땅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