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단은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으나 통할 때도 있다. 남과 북은 권력이라는 전압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고, 정치와 종교 역시 서로의 이익을 위해 협상하고 공존하기도 한다.
영화, <자백> 1. 이젠 어떠한 이야기를 해도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시편 9편의 말씀을 통해 의로운 재판관이며 공의의 하나님께서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는 확신과 더불어 그의 나라가 온전히 이 땅에 거하기를 소망한다. 살면서 때로는 망각이 귀한 선물이기도 하나 망각해서는 안 될 수많은 것들, 공의로운 분별을 통해 불의한 것들이 더 이상 이 땅에 머무르거나 반복되지 못 하게 해야 할 것이다.
작년 끝자락에 놓친 영화 이야기로 새해 벽두의 문을 열고자 한다.
2. 아프면서도 통쾌했고, 스산한 부분이 없진 않았지만 내 인생 최고의 영화로 기억될 <자백>은 시민들의 스토리 펀딩으로, 한 해직 기자를 통해 목숨을 걸고 만들어졌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독인 최승호는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보도할 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원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필요한, 정말 중요한 뉴스를 보도하는 게 공영방송의 역할이다. 지금 공영방송은 언론이라고 하기엔 어려운 상태가 됐다. 공영방송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자백>을 굳이 영화로 만들 필요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 말은 누군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을 때 돌들이 일어나 소리치게 된다는 것으로 들렸다. 소설가 이외수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꼭 봐야 할 영화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다분히 정치적 편향이 강한 영화라고 할 수도 있지만 분단된 조국의 현실에 대한 애잔함, 언론의 사명과 소명을 담은 <자백>은 때로는 정치적이기보다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고, 우리 사는 세상과 삶의 이야기이며, 또한 종교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과 어디에서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이 나라에서는 연일 계속되고 있다. 탈북자들과 거대한 조직의 압박으로 인해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는 억울한 심정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이들 모두가 주인공이다. 그중 국정원에 의해 간첩으로 내몰린 어느 탈북자, 간첩이라는 명백한 증거는 동생의 증언 ‘자백’이었다. 그런데 만약 국정원이 거짓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은 한 언론인이 움직였고, 2015년 대법원은 그 탈북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최근 대한민국 국가 권력의 거짓말들은 까도 까도 끝이 없다. 그 거짓말들에 편승한 채 권력과 한배를 탔던 정치인들과 종교인들, 그리고 언론들은 권력이 힘을 잃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동시에 비난들을 쏟아내며 희생양 찾아 돌 던지기에 여념이 없다. 처연하기만 하다. 우리 교계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예언자적 소명을 다해야 했으나 권력의 눈치를 살피며 살다가 이제 와서 마구잡이 비난들을 퍼붓고 있다. 심지어 시국선언에 참여했던 몇몇 인사들의 모습은 코미디요, 세월호 사건에 막말을 퍼부었던 이들이 권력에 기대는 모습은 한편의 막장드라마 같았다. 현 국가 혼란의 핵심적 성격은 ‘최순실 국정농단’이 아닌 ‘헌정질서파괴’이며, 언론 역시 헌정 질서의 회복을 위해 ‘언론다움’을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때맞춰 교계 언론들의 ‘언론다움’을 되찾는 계기도 마련될 수 있었으면 한다. 무튼 작금의 상황에 모두가 자유로울 순 없지만 적어도 ‘교회가 정치에 앞장설 수는 없으나 정치가 잘못 갈 때 교회가 바로잡아줘야 한다’는 본질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과 함께 한 2016년이 저물었다.
3. 지금까지의 역사가 그랬듯 세상은 꿈꾸고 노력하는 사람들로 인해 바뀌어 진다. 그 꿈들은 이뤄지기 전엔 불가능한 꿈이었고, 모든 역사적 성취들도 그것이 이뤄지기 전까진 불가능한 것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그 바람과 변화가 세상에서 먼저 시작돼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나 우리 믿는 이들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니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본지도 의로운 칼날이 무뎌지지 않도록 더욱 노력할 테다. 2016년 모두의 자백들이 올 한해 반드시 희망의 언어로 바뀌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4. 에필로그, 영화에서 권력자들과 실무자의 모든 정황과 증거가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사과하지 않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기억이 나지 않고, 모른다’의 반복은 언제쯤 멈춰지게 될까.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선친 사건 이후, 22년간 단 한 번도 사과가 없었던 평강제일교회도 떠올랐다. 사과하고 인정한다는 것이 그리 어려운 건지.
특히 영화 <자백>은 시민들의 펀딩으로 이뤄졌는데 본지가 예전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졌을 때 김동호 목사의 제안으로 십시일반의 나눔을 통해 기사회생했던 일과도 맞물려져 감동이 더했다. 함께, 더불어 나누며 사는 것이 이 땅의 하나님 나라이지 싶다.
✽얼마 전 자유를 찾아 어렵게 이 땅에 안착한 탈북자들을 대상으로한 집회에서 안타까웠던 또 하나는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단들 포교의 문제였다. 연약한 부분을 파고드는 미혹에 날이 갈수록 피해의 규모가 커지고 있다 하니 이 역시 관심 갖고 주목해야 할 사각지대임이 틀림없다
뉴질랜드 2005년이었던가. 탁지일 교수와 오세아니아를 처음 방문했을 때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에서 전혀 아름답지 못한 이단에 대해 나누는 이유는 더욱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서”라고 나눈 이야기가 지금도 잊히지 않고 있다. 이후 여섯 번이나 뉴질랜드를 방문했다. 이렇게 머나먼 나라를 자주 방문했던 이유는,
첫째로 뉴질랜드는 전 세계에 몇 안 되는 청정 지역인데 이단 문제로도 근방에 있는 호주나 미국 등의 나라보다 청정 지역이다. 물론 대부분의 이단들이 소수로나마 활동하고 있긴 하나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아직 나쁘진 않은 편이다. 이즈음 경계의 역할이 중요하기에 “지킬 수 있는 곳들은 최선을 다해 지켜보자”의 다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집회는 코스타와 더불어 처음으로 오클랜드한인교회협의회 초청으로 이뤄졌다.
두 번째는 그리움과 정 때문이다. 조국의 교회에서도 함께 하지 못하는 일에 이곳 교민들과 청년들의 나눔이 그치지 않고 있기에 감사 인사를 전하고자한 이유다.
다른 나라에 비해 뉴질랜드는 참 살갑고, 사는 땅과도 같은 여유가 묻어있어 좋다. 나쁜 습관이긴 하지만 다른 곳들과는 섬김의 차원이 다른 것 같다. 요즘 이단 문제를 세상 사람이나 세상 방송, 심지어 외국인들까지 나서 풀고 있는 것처럼 섬김과 나눔이 살고 있는 땅보다 먼 타지에서 더 관심을 갖고 있음은 감사한 일이긴 하나 조금 씁쓸하다.
이번 코스타와 오클랜드 집회는 몰몬교와 다락방 등 여전히 이단 상담이 많았으나 달라진 것이 있다면 신사도나 인터콥 등 말 많은 단체들의 상담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교회의 혼란이 많아 어느 정도의 교통정리는 했으나 이곳을 포함해 각 선교지와 교민들이 거하는 곳들을 가끔씩이라도 살펴봐야 할 필요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하나 더 나누고 싶은 아쉬움과 감사의 제목은 여러 나라의 교민 사회가 대부분 그렇겠지만 교회의 분열 내지는 다툼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해외 집회를 다녀온 후의 변함없는 기도 제목이다. 그리고 감사했던 일은 다락방에 오랜 기간 머물렀던 한 친구가 우여곡절 끝에 그곳에서 나오게 됐는데 이번 코스타에 참여하며 결국 온전히 돌아오게 된 일이다. 그 하나만으로도 고가의 비행기 값이 아깝지 않게 됐다. ‘여전히 한 영혼은 천하보다 귀하다.’
✽뉴질랜드로 떠나기 전의 지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더랬다. 그런데 막상가보니 남과 북을 합친 것보다 더 큰 나라의 지진은 그 규모에 비해 피해가 크지 않은 편이었다. 걱정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피해자(와 사역자)들을 통한 희망 이번 간담회는 귀하게 마련됐다. 일전의 간담은 형식적인 부분이 적지 않았으나 이번엔 각 주요 이단 피해자들과 사역자들의 회복을 위한 정보 나눔과 다시금 이단 피해자들을 구체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됐는데 기대 이상이었고, 의의도 컸다. 지금까지 본지는 이단 피해자들과의 간단한 상담, 그리고 간단한 자료들을 나누며 상담가들을 소개하는 정도였는데, 이젠 좀 더 적극적인 정보와 대책을 나눌 수 있는 구심점을 마련하게 됐으니 올해는 이단에 포교되는 이들보다 돌아오는 이들의 소식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또한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것은 각 이단들의 수치와 교세였는데 이 부분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 신천지와 통일교는 예상대로였고, 의외로 하나님의교회와 구원파는 그 교세가 본지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물론 정확한 교세는 그들 쪽에서만 알 테지만 대부분의 이단들은 자신들 교세를 부풀리는 경우가 다반사다(상당수의 한국교회도 이 부분에선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하나님의교회 같은 경우는 계속 기존 교회들을 매입하고 있고, 해외 현황도 현지인들을 중심으로 포교하고 있는 것들이 눈에 띄기에 신천지보다 성장세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본지보다 앞에서 지켜본 이들의 증언대로라면 한국교회가 심각하게 걱정할 정도의 수치까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간 한국교회에 경각의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 강의 때 하나님의교회의 성장세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말하곤 했는데 부풀릴 필요까지는 없을 듯싶다. 그러나 여전히 심각한 이단 중 하나이니 끝까지 긴장과 경계의 끈을 놓치진 말아야 할 것이다.
이번 국정논단의 중심에 선 자들은 그들의 시대가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믿었겠지만 역사와 국민은 그들의 부정과 불의를 결코 좌시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이단 피해자들의 아픔과 부르짖음에 공의의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할 것이고, 이단들에겐 그 책임을 묻게 될 날이 곧 오게 될 것이다.
투명하고 건강한 양극의 상생을 기대해 본다. 진짜 보수와 진보는 통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