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 통합 측의 사면 철회가 없었다면 그 파국과 오명을 어찌했을까 싶다. 긴박했던 과정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치욕을 막아낸 총대들과 교수들, 그리고 기도로 함께 했던 성도 등 모두의 분투는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타산지석(他山之石 남의 산에 있는 돌이라도 나의 옥을 다듬는 데에 소용이 됨) 그렇다고 교단 정치꾼들의 협잡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언제고 반복될 일이다. 통합 측 사무총장 불신임 투표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이러한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서조차 상당수의 총대들이 반대의 의견을 개진한 것을 보면 앞으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망은 틀리지 않을 듯싶다.
이번 일을 주도한 특사위원장이었던 이의 진정성 없는 사과와 최근 언론에 게재한 넋두리를 보면 그 심증은 굳어진다(그 내용에 앞서 이단 옹호자인 황규학씨가 편집인으로 있는 「뉴스 타겟」에 글을 게재하는 등 그의 행보는 여전히 신뢰가 서질 않는다). 부디 이번 일이 총회가 끝났다고, 사면이 철회되었다고 해서 어물쩍 넘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근본적인 책임은 특사를 단행했던 이들에게 있으니 반드시 사태를 주도한 장본인들을 통해 상식에 기초한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야만 한다. 그래야만 실추된 명예를 회복함은 물론 앞으로 교단이 더욱 건강하고 깨끗하게 서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면 철회로 철퇴를 맞은 4곳의 이단은 통합 측을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그러나 각 교회들이 연합하여 관심과 기도로 잘 대처해 나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직한 영들로 순결하고 순전한 교회를 이뤄내기 위해 비싼 수업료를 치를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해 정치 모사꾼들과 이단옹호 관련자들의 설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계기와 교훈이 마련될 테니 그나마 다행이지 싶다.
자중지란(自中之亂 같은 편 안에서 일어나는 다툼) 이렇듯 교회의 순전함을 지켜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나 내부 분열로 인해 신음하는 교회들에게 이단 문제는 관심 밖일 때가 많다. 간혹 그러한 교회에 초청을 받을 때도 있지만 초청의 변이 내부 문제에 따른 신천지 등 이단들의 접근을 경계하기 위한 이유 외에는 없다.
타협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될 이단 등의 문제에 있어서도 이해관계가 얽혀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의 태도로 관망하며 협력을 이루고 있는 문제도 넘어야 할 산이다. ‘한국교회가 보기에는 어떠한가?’보다 ‘내가, 또는 우리가 보기에는 어떠한가?’를 우선순위로 두곤 한다.
최근 모 교회에서의 집회 중 교회가 속한 교단에서 ‘참여금지’결정을 내린 ‘인터콥’에 대해 한 차례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런데 1시간 30여 분 최선을 다해 전한 말씀은 안중에 없고, 그 언급으로 말미암아 예배 후 약간의 소동이 있었다. 교회가 인터콥과 깊은 관계가 있었음을 알지 못했던 강사는 은혜를 끼치러 갔다가 그만 ‘무례한’이 되고 말았다. 작은 설전이 오가는 중에 누군가는 그 같은 결정이 하나님의 뜻이냐고 묻기도 했다. 지난 10월 예장 통합 측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강의 때에는 교회 상당수 성도들이 인터콥에 연루되어 교회가 풍비박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해온 이가 있었다. 좀 더 자세히 그 내용을 들어보니 그간 본지가 취재했던 것들과 다르지 않았다. 이렇듯 여전히 인터콥의 아집과 오류 등으로 인한 문제점들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지만 단체의 지도자들은 손을 놓고 있다. 인터콥을 지도하겠다고 나선 이들 역시 다르지 않다. 인터콥은 교회분열의 아픔들과 맞물려 여전히 한국 교회 안에 뜨거운 감자로 선하지 못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애터미’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단은 아니나 대표자의 예전 이단 전력 등으로 인해 그간 본지의 상담 중 두, 세 번째로 문의가 많았기에 집회 때 가끔 언급하곤 했다. 나름의 정확한 상황과 진단을 말했음에도 그 언급만으로 불쾌해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도대체 팔이 안으로 굽어지는 그 사고들을 어찌할까 싶다. 세상 직업의 귀천은 없겠으나 세상 직업이 교회 공동체 안에 깊게 개입하지 않도록 하는 것에 대한 이해를 구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사면 문제는 마무리가 아닌 시작점일 뿐이고, 교회들이 안고 있는 분열과 이해관계의 문제 또한 지혜롭게 풀어가야만 하는 어려운 때를 지나고 있다. 우선순위를 두고 사는 일과 중심에서 엇나가지 않도록 하는 일은 언제나 복잡하고 고단한 일임에 틀림없다.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 모두가 함께 싸워도 부족할 판에 내부의 문제들이 족쇄가 되지 않길 바란다.
백전불태(百戰不殆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음) 한 이가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는 말을 듣고는 고사성어에는 없는 말이라며, 제대로 짚어준 것이 ‘지피지기 백전불태’였다. 어떻게 말하든 그 뜻하는 바를 잘 알고 있으니 별 문제는 없겠으나 그 뜻을 상기하니 새로운 다짐이 선다. 부디 한국교회가 백전불태 할 수 있도록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를 제대로 깨닫고 무사히 전진하길 바란다. 가끔 뒤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갖는다면 더더욱 좋겠고.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은 2009년 1월, 미국 뉴욕 허드슨강 수면에 비상착륙한 여객기의 155명 탑승객 전원이 무사 생환한 사건을 다룬 영화다. 영화 칼럼니스트 한동원은 마지막까지 혹시나 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확인하고, 가장 나중에 비행기에서 내리고 또, 구조 이후에도 생존자의 숫자가 확인되기 전까지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거절했던 기장의 행동을 ‘영웅의 일’이 아닌 ‘자신의 할 일’에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모인 ‘자신의 할 일’들은 기적이 되고, 그 기적은 ‘모두의 일’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기장이 제시하는 세계였다고···. 살아가며 그저 ‘자신의 할 일’만이라도 최선을 다할 수 있다면 된다. 그뿐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별 감정을 내색지 않던 아내가 기장이 마지막까지 승객들을 살피는 장면에서는 눈물을 쏟았다. 그래! 잘 안다. 세월호 때문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