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종말론사무소의 윤 소장입니다. 몇 년 전일입니다. 선물을 사려고 친구와 함께 수원에 있는 어느 백화점을 갔습니다. 백화점에서 이것저것 보고 선물을 골라 구매한 뒤, 이제 돌아가려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랬더니 말쑥하게 차려입은 잘생긴 청년이 저에게 작은 종이 하나를 건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는 저에게 충격적인 한 마디를 전했습니다. “종말론입니다.” 저는 순간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아니, 저 사람 뭐지? 내가 종말론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걸 어떻게 알았지? 왜 저기서 나에게 종말론이라고 말했지?’ 갑자기 물음표를 단 문장들이 제 머릿속을 가득 메웠고, 저는 옆에 있던 친구에게 소리쳤습니다. “저 사람이 지금 종말론이라고 했어!”그러자 친구가 실소를 터뜨리더군요. 그리고 저 사람이 줬던 종이냄새나 맡아보라고 하더군요. 그 종이에는 ‘종말론’이 아니라 ‘JoMalone’이라 쓰여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향수 브랜드였습니다.사람은 듣고 싶은 걸 듣게 되나 봅니다. 조 말론의 향수 샘플은 정말 향기롭더군요. 지갑을 열만한 향기였습니다.한편 우리의 ‘종말론’은 어떻습니까? 제가 종말론사무소를 개소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우려 섞인 표정으로 저에게 물었습니다. “왜 이름이 ‘종말론사무소’이지요?” 이 이름이 이상하다는 소리를 한두 번 들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한 우려는 이 사회 전체가 ‘종말론’을 어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입니다.여러분은 종말론이 무어라 생각하십니까? 아니,‘종말론사무소’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셨나요? 저는 이 기회에 현대종교 지면에 종말론사무소가 무엇인지 박제해두고 다음에 저런 질문을 받는다면, “현대종교 2019년 3월호를 보세요”라고 답하고자 합니다. 현대종교의 발전을 기원합니다.1. 지구의 종말?사람들은 ‘종말론’이라고 하면 영화 <아마겟돈> 비슷한 것을 떠올리는 듯 합니다. 많은 분들이 보셨겠지만, 그 영화의 줄거리를 대강 말씀드릴게요. 지구를 향해서 운석이 날아오고 있습니다. 저 운석을 막지 못하면 결국 ‘지구는 종말’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주인공인 브루스 윌리스가 우주선을 타고 그 운석으로 날아가, 논개처럼폭탄을 가지고 운석과 함께 운명을 달리합니다. 그래서 지구는 종말에서 벗어나고 다시 평화를 되찾게 됩니다.그런데 이 영화의 제목을 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아마겟돈’에서 가져왔을까요? 지구의 종말을 놓고 대결하는 브루스 윌리스와 운석처럼, 요한계시록도 마찬가지로 지구의 종말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만일 이 영화에서처럼 성경에서의 종말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의 종말이라면, 그건 정말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또 입에 담고 싶지 않은 내용일 것입니다.‘종말론’을 향해 손사래 치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만할 것입니다. 이번엔 극장에서 빠져나와 이번엔 신문의 사회면을 펴 봅니다. 거기서는 ‘종말론’보다 ‘시한부 종말론’이라는 말이 더 익숙합니다. ‘시한부 종말론’에 빠져서 일상을 포기하고 특정 시점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놀란 가슴이 ‘종말론’을 보고도 놀라는 것 아닐까요?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일단 제대로 된 종말론을알기 위해서는 극장과 신문을 잠시 잊고서 성경의 세계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2. 종말론의 결말 : 새로워질 창조세계우리는 먼저 종말론의 결말 부분부터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옛 창조세계는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그 자취를 감추게 될 것입니다(계20:11, 21:1). 그러나 이것은 지구 파괴의 끔찍한 소식이 아니라, 기쁨의 소식입니다. 죽음에 신음하고 있던 창조세계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흘러넘칠 것입니다. ‘물이 바다 덮음 같이’ 말입니다.
로마서 8:20, 21
피조세계 (전체1))가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것은 피조세계 전체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1) “피조물”이라 번역된 희랍어 크티시스(κτισις)는 ‘피조세계 전체’를 의미합니다.그리고 이 피조세계 전체가 죽음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어 새롭게 되는 것이 성경의 최종 결말입니다. 즉 우리의 끝은 우주 만물의 갱신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뿐 아니라 구약의 이사야와 신약의 베드로가 함께 바라던 것이기도 했습니다.(사65:17; 벧후3:13)즉 성경의 결말은 ‘하늘과 땅의 새로워짐’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한자로는 新天地신천지)’이라 말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이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뤄질 것이고, 그때는 바로 죽음이 죽어버리는 때, 그래서 모든 사람이 다시 삶을 얻는 때입니다(고전15:22~26).그러니 성경의 종말론은 그야말로 해피엔딩입니다. 두려워할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지점에서 성경이 말하는 신천지가 아닌, 이만희씨가 이끄는 신천지가 만난 두 가지 막다른 골목을 발견하게됩니다. 먼저는 ‘지금이 주 재림 때’라는 신천지의 주장입니다. 신천지의 모든 성경 해석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주 재림 때라는 전제 위에서 이뤄집니다. 그러나 제가 방금 말씀드린 고린도전서 15장 22~26절은 예수님 재림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말해주는 본문입니다.죽음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부활하며,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뤄질 것이라 말하고 있지요. 그런데 지금 모든 사람이 부활했나요? 모든 창조세계가 새로워졌나요? 이 질문에 믿는우리는 “아직”이라고 답합니다. 따라서 지금은 주 재림 때일 수 없는 것이지요.그리고 신천지의 두 번째 막다른 길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정의입니다.
이사야도 베드로도 새 하늘과 새 땅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단어를 모르는 기색을 띠거나 미래의 특정 집단을 언급할 것이라는 뉘앙스를 전혀 보여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사야와 베드로를 포함한 유대인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이 곧 피조세계 전체의 새로워짐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의미를 오늘날 과천에 자리 잡은 무리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는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언급된 구약 이사야와도 맞지 않고, 신약의 베드로후서와도 맞지 않습니다.마찬가지로 유대인인 요한이 기록한 요한계시록은 말할 것도 없지요.어찌 되었든, 성경적 종말론의 화살은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과녁에 꽂혀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피조세계 전체의 새로워짐이 종말론의 결론입니다. 그렇다면, 남은 질문은 이것이지요. 이 종말론의 화살은 어디서부터 날아가기 시작했을까요? 다시 말해서, 언제부터가 종말일까요?3. 종말의 시작 : 죄와 죽음을 이미 이기신 당신신천지는 1984년 3월 14일, 이만희씨가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을 시작한 때를 아주 중요한 시기로 봅니다. 바로 그때부터 신앙세계의 밤에 빛이 던져진 순간이고, 재창조가 시작된 때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신천지 교인들에게서 “6000년 동안 빼앗겼던 사탄에게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아온다”는 말을 흔하게 들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때 “6000년”은 아담 때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기간을 말하는 것인데, 신천지 말대로라면 예수님도 사탄에게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아오지 못한 것이 됩니다.)그래서 신천지의 종말론은 1984년부터 시작됩니다. 이때부터 이만희씨를 통해 사탄에대한 반격이 시작되고, 이 전투는 신천지인 144,000과 순교자들과의 신인합일로 마무리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탄의 하수인이라믿는 한국교회와 싸우는 것이고, 순교자들과 신인합일 할 수 있는 144,000명이 되고자 오늘도 무리한 포교에 힘을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1984년을 말하지 않습니다. 악이 끝장나기 시작했던 때는, 바로 메시아 예수께서 팔레스타인 땅에서 모래 바람을 맞으며 샌들 신고 거니시던 A.D.1세기부터였습니다.그분이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병든 사람들을 고치시고 진리를 전하시며 귀신들린 사람을 자유롭게 해주실 때부터 악은 그분 앞에서 힘을 쓰기는커녕, 오히려 번개처럼 땅으로 매다 꽂혔습니다(눅10:18). 그리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다음의 사건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골로새서 2장 14, 15절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고린도전서 2장 7, 8절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십자가는 감춰졌던 하나님의 방법이었고, 이 방법으로 예수님은 승리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싸늘한 주검이 되었던 예수를 하나님은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십자가에서의 사랑이 죽음을 이긴 순간이 바로 부활이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셨습니다(마28:18). 그리고 이기신 예수님은 하늘에 오르셔서 모든 땅을 향한 자신의 통치를 시작하셨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종말’이라는 거대한 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종말은 메시아 예수의 초림으로 시작되었고, 메시아 예수의 재림으로 마무리되는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지구의 종말이 아니라, 메시아 예수의 통치에 참여한 사람들의 삶을 통한 죄의 종말, 그리고 메시아의 재림을 통한 죽음의 종말이 종말론이 가리키고 있는 종말의 대상들입니다. 그리고 오늘 저와 형제, 자매 여러분들은 메시아 예수의 통치에 참여하여, 악이 이미 예수 안에서 패배했고, 그 패배가 결국온 우주에 이르게 될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곧 ‘종말의 사람들’인 것이지요. 우리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서, 곧 십자가와 새 하늘과 새 땅 사이에서 오늘 죄와 맞서 싸우는 하나님의 군사들입니다. 이렇게 정리해보니, 신천지 교리는 결국 종말론의 문제이며, 저는 종말론에 대해 올바른 관점을 갖는 것에서부터 신천지식 성경 해석의 문제를 짚어나갈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겠군요.“종말은 언제 시작되었고, 언제 끝나는 것입니까?” 이 질문에 신천지 교인과 개신교인은 서로 다른 답변을 내놓을 것이고, 이 질문에 대한 성경적 답변을 준비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죄를 끝장내는 사람다운 삶이 필요할 것입니다.제가 좋아하는 ‘종말’에 대해서 쓰다 보니, 어느덧 충분한 분량의 글이 나왔지만 정작 종말론사무소에 대해서는 아무 얘기도 하지 못했네요. 종말론사무소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현대종교 2019년 4월호를 보세요”로 답변을 수정해야겠습니다.그럼 독자 여러분, 다음 달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