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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누각
현대종교 | 탁지원 소장 takjiwon@hdjongkyo.co.kr
2022년 10월 06일 08시 45분 입력

긴히 풀어야 할 일임에도 사건, 사고가 터진 후에야 관심을 두는 일이 빈번하다. 이단 피해도 마찬가지이다. 신천지 등 주요 이단 문제에만 관심을 두다가 오랜만에 통일교(피해자)에 대해 생각하게 된 이유는 아베 전 총리의 피격사건 때문이다. 통일교 피해가 가장 큰 곳은 일본, 300여 명이나 되는 일본 쪽 변호사들이 나서 도움을 나누고 있다 하니 상황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에서 태동한 이단인데도 이 땅의 교회 중 어느 하나 책임을 지거나 미안한 맘을 안고 있는 교회를 보거나 들은 적이 없다.

시한부 종말(휴거 소동), 그 후 30년


1992년 10월 28일, 시한부종말론의 열기로 뜨거웠던 서울 연남동 집회 현장에 선친과 함께 했던 때가 30년이 지났다니 세월이 살 같다. 그날의 휴거 소동은 결국 헤프닝으로 끝을 맺었다. 나름 전 세계가 주목했건만. 그렇게 망상은 허위로 끝났으나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했던 여러 단체가 날짜가 잘못됐다는 등의 변명으로 일관했더랬다.

당시 기사를 살펴보니 시한부종말론의 핵심 단체였던 다미선교회는 이장림씨가 구속된 이후 ‘정통 교회로의 복귀’ 명령을 내렸으나 일부 맹신도들은 날짜를 연기했고, 샘터교회라는 곳은 나팔절이 일주일간 계속된다며 11월 4일을 휴거 날짜로 즉석에서 정하기도 했다.

다베라선교회도 10월 10일로 휴거 날짜를 정했지만 12월 31일로 역시 날짜를 연기하며 집회를 이어갔고, 그 외 아미기도원 등 직간접적으로 이 소동에 참여했던 상당수의 단체가 휴거 연기를 선언했다. 현재 대부분의 단체는 소리소문없이 사라졌고, 일부는 한국교회로 돌아왔으며, 그때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이단들은 여태껏 폐해를 답습하고 있다.

그날과 그때는 오직 하나님만 아시니 그저 마지막 때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성도의 본분일 텐데 종말의 때를 안다고 주장하는 이단들의 혹세무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물론 성경적이고 건강한 종말관, 내지는 구원관 등을 방치한 한국교회도 이 문제에 있어서 자유롭진 못하다. 또 다른 이장림이 되어 시한부종말론이나 변형된 종말관으로 미혹하는 이단에 맞서 부디 말씀으로 바로 서고자 노력하는 시한부종말론 30주년이 되었으면 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예방과 대처가 될 수 있을 테니.

*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일은 당시 선친의 테러 사건이다. 시한부종말론의 불발 후에 관련 기자회견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집 근처에 숨어있던 괴한 2명의 피습을 받은 사건이다. 사회 문제로 비화 된 이단 문제를 비판하다가 일어난 테러는 늘 멈춰지지 않았다. 그 후 1994년의 피습은 그가 겪은 마지막 테러가 되었다. 다시는 이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소망할 뿐이다.

** 이번 호는 시한부 종말 30주년을 맞이해 특집으로 준비했다. 자세한 내용은 본지 기자들이 애써서 작성한 기사들을 잘 살펴봐 주시길 바란다.

기초


1. 모래 위의 누각이라는 뜻으로 오래 유지되지 못할, 겉모양은 그럴싸할지 모르겠으나 기초가 약해 오래가지 못한다는 뜻의 ‘사상누각’은 이단 대처에도 중요한 요소이지 싶다. 세상 어느 것 하나 기초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기에 그 마음이 이단 대처에도 적용되었으면 한다. 이해관계가 걸려 있고, 처한 일들만 풀기 위해 애쓰는 것으로는 문제를 제대로 풀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2. 몇 달 전 안양의 집회 때에도 같은 문제를 고민했더랬다. 강의 전 몇 가지의 요청이 있었으나 우선은 기본적인 이단 문제에 대해 나누며 경각심을 가진 후에 작은 것부터 충실히 문제를 풀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강의를 준비, 진행했다.

그러나 며칠 후 돌아온 답은 수고했다는 인사 대신 원했던 강의를 듣지 못해 아쉽고 답답했다는 의견이었다. 강의 때 모두가 진지하게 임했고, 집회 후의 피드백도 좋았건만 모두의 의견이라고 말하며 실망을 토로하는 목회자의 이야기에 맘이 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모든 문제를 강사가 풀 수는 없는 법, 동기부여와 계기를 갖게 한 후에 이제 공은 교회의 것이 됐으니 협력을 통한 경각과 경계의 마음을 다짐하는 것이 늘 중요하다고 믿었다.

더불어 계속해서 구체적인 실천 과제를 나누는 것이 강의 후의 순서이곤 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랜 시간 쌓인 매너리즘의 문제와 이제는 강의의 패턴이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반성도 되었기에 이번 일을 나쁘다고만 생각진 않는다. 그러나 초청하는 이들의 마음도 달라졌으면 싶다. 여전히 이 문제 터지면 이 문제 쫓고, 저 문제 터지면 저 문제 쫓는 식의 대처, 소 잃고 외양간도 고치지 못하는 작금의 이단 대처로는 처한 문제들을 제대로 풀어갈 수 없을 것 같아서다. 다시금 기초와 기본이 필요한 이유이다.

3. 아울러 신천지 문제에만 집착하는 이단 사역자들과 교회에 신천지뿐 아니라 모든 이단이 다 중요하다고 말해왔건만 여전히 특정 이단 외에는 관심이 많지 않다. 물론 신천지가 나타나기 전의 이단들은 밖에서의 다툼이 대부분이었으나 내부 안에 깊숙이 들어와 활동하는 이단으로 인해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리게 되었으니 그럴 수도 있지 싶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신천지 문제에만 매달려야 할진 모르겠다. 그보다 더 심각하다는 진단을 받는 전능신교라든지 한국에서 교세가 가장 큰 하나님의교회, 한국교회의 무관심 속에 국내에 200개 이상, 해외에 900개가 넘는 교회를 세워 온 생명의말씀선교회이요한 구원파와 더불어 이번 아베 전 총리 피격사건으로 온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통일교와 이 땅에 들어온 지 120년이 넘었고, 최근 대면 포교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 등의 이단 문제에도 관심을 두길 바라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전방위적인 이단 문제에 관한 대처를 고민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일본과는 ‘가위바위보’조차 져서도 안 되고, 한일전 등의 운동경기라도 있을 때면 온 국민이 열렬히 응원에 나서곤 하는 것이 지난 과거 역사의 아픔 때문이라는 것을 일본 정치인들 외에 모르는 이가 없다. 허나 모든 것마다 죽을 힘을 다해 싸워 이겨야 하며, 독도는 우리 땅이라 외치고, 역사 왜곡 관련 항의와 위안부 문제의 분노가 당연하지 않을 수 없으나 우리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의무를 다한 후의 외침이 더욱 온당하지 않을까 싶다. 정당성의 획득은 그렇게 자리하는 것일 테니. 해야 할 일을 등한시하면서 부르짖는 데만 열심을 다하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의 이단 문제로 인한 일본 등 각국의 피해자들을 섬겨주고 위로한 후에 우리의 외침이 가닿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탁지원 소장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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